기 우(杞 憂)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기(杞)나라에 사람이 있어,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려 앉으면 몸 붙일 곳이 없을 것을
근심하여, 자고 먹는 것을 그만둔 사람이 있었다. 또 그의 근심하는 것을 근심하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가서 이것을 깨우쳐서 말했다.
"하늘은 기운이 쌓인 것 뿐이니, 어디든 기운이 없는 곳이 없네. 몸을 굽히고
펴고 호흡함과 같은 것은, 종일토록 하늘 가운데 있어서 행함을 그치는 일이 없네.
어찌 하늘이 무너져 내려앉을 것을 근심하는가?"
그 사람이 말했다.
"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인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이 마땅히 떨어지지 않겠는가?"
이것을 깨우쳐 주려는 사람이 말했다.
"해와 달과 별들도 또한 기운이 쌓인 가운데 빛남이 있는 것일세. 만일 떨어지게
할지라도, 또한 능히 맞추어 상처낼 곳이 있지 아니하네." 그 사람이 말했다.
"땅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하겠나?" 깨우쳐 주려는 사람이 말했다.
"땅은 덩어리가 쌓였을 뿐이니, 사방의 허한 곳을 채우고 막아서, 어느 곳이나
덩어리가 없는 곳이 없네. 걸음을 걷고 땅을 밝고 함과 같은 것은 종일을 땅 위에서
행하여 그치지 않는 것일세. 어찌 땅이 무너질 것을 근 심하겠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마음을 놓고 크게 기뻐했다. 이것을 깨우쳐 주려는 사람도 또한
마음을 놓고 크게 기뻐했다.
기(杞)나라는 주(周)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자손인 동루공(東樓公)을 봉하여 우왕(禹王)의 제사를 받들게 한 작은 나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기현(杞縣)이 그 옛 도읍이다. 이 에피소드는 다음에, 옛날의 장려자(長廬子)라는
현명한 사람이 그 이야 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고 근심한 것은, 먼저의 근심을 지나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무너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도 올바른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 다음, 열자(列子)의 말을 빌어서,"하늘과 땅이 무너지거나
무너지지 않거나, 그런 것에는 마음을 혼란시키지 않는, 마음 없는 경지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끝 맺고 있다.